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웅 산 수 치 (문단 편집) == 기타 == * [[외래어 표기법]] 기준으로는 [[버마]]어 이름이므로 음절 단위로 끊어서 ''''아웅 산 수 치''''로 표기하는 것이 옳으나([[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61&qna_seq=88453|국립국어원 답변]]) 한국 내에서는 ''''아웅산 수지''''라는 표기가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아웅산 수치'라는 표기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수지 본인은 이쪽이 본래 발음에 가까운 표기이므로 '아웅 산 수 지'[* 버마어 표기법에 따라 음절별로 띄어 쓰는 것이 맞다. 아웅산 수지라는 표현은 임의적인 띄어쓰기이므로 지양해야 한다.]로 표기해 달라고 2013년 1월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311358501&code=940100|요청]]했다. 다만 2013년 3월에는 띄어쓰기 없이 '아웅산수찌'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90|기사]]가 있는데 정확히 본인이 원하는 한글 표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단, 한국주재 미얀마인들이 직접 발음하는 것을 들어 보면 '아웅산 숫지', 또는 '아웅산 숫찌'에 가깝긴 하다.] 한국어 단어에서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듣고 불쾌해 했으며, 본인 이름의 원래 발음에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버마어 발음을 [[IPA]]로 적으면 [àʊɴ sʰáɴ sṵ tɕì\]이다. 버마어의 파열음 및 파찰음은 무성무기음-무성유기음-[[유성음]]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이를 비슷하게 자음을 구분하는 태국어나 베트남어의 외래어 표기법 식으로 구분해서 적으면 '아웅 상 쑤 찌' 정도가 된다.] '수치'라고 표기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버마식 이름은 성씨라는 게 따로 없으며 개인별로 이름만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보통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하는 때 바꾼다고 한다. 아웅 산 수 치의 경우엔 아버지의 이름인 '아웅 산'에 수 치를 붙여 이름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웅 산'을 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냥 전체가 이름인 것이다. 영국 유학 등으로 인해 성씨가 필요해서 아버지 이름에 자기 이름을 붙여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힝야족 인종청소(Clearance Operation) 사태가 벌어지자 '수지'의 요청을 무시하고 기존 표기인 '수치'로 표기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수지'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취재한 기자들을 구속하는 것을 [[https://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4&cid=334823&iid=3479571&oid=001&aid=0010320311|방조하는 등]] 말 그대로 '이름값'(羞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래서 [[영국]] [[에든버러]]시는 아웅산 수치에게 준 명예 시민권을 박탈하기로 했다.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 내 로힝야족에 대한 대규모 탄압을 묵인하고 방관했기 때문이다.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도 2012년 수치에게 수여한 '엘리 위젤 상' 시상을 철회했다. * '아웅산'이 '산(山)'을 연상케 하는 탓에 이름의 일부가 지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2017년 6월 1일 [[외래어 표기법]] 개정 이전에는 외래어 산 이름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였는데 그 이후에는 띄어쓰기 조항이 없어졌다. 다만 원래 '아웅산'이라고 쓰든 '아웅 산'이라고 쓰든 오해를 부르기에는 충분하다.] 같은 이유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해서도 "아웅산에 있는 묘소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인가?"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꽤 많다. 또한 '수지'도 영어 이름 'Susie'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보란듯이 그녀와 [[친목질]]을 했다. 힐러리가 공식일정으로 직접 자택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었으며 이후에도 2012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뤽 배송의 수 치 전기 영화 미국 시사회 때에도 참가해 배우, 감독과 사진을 찍었다. 일단 힐러리 개인적으로도 여성 지도력을 강조하여 같은 여성 정치인으로써 이미지 개선을 노리는 점도 있겠지만 현재 [[미얀마]]는 [[중국]]의 자라나는 영향권을 견제하기 위한 요충지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경제 지원 등의 당근으로 미얀마를 자국 쪽으로 끌어들이면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 정도를 제외한 주변국이 모두 중국에 적대적인 모양이 나온다. 중국도 이를 경계하여서 아웅산 수 치가 집권한 후 첫 외교 회담을 위해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를 방문하는 등[[http://news.joins.com/article/19844622|#]]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을 보였다. * 어린 시절 거의 [[영국]]에서 자랐고 영국인과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자식까지 둘이나 두어, 거의 영국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공격 받고 있다. 때문에 미얀마 군부가 자꾸 영국인이라며 공격하는 것에 대해 수 치는 "나는 한 번도 영국 국적을 얻은 적이 없는 완전한 버마인"이라고 부정하며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 남편인 마이클 에어리스는 [[티베트 불교]] 연구의 권위자이다. 이른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발탁되기도 했다. 수 치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후부터는 수 치 쪽이 훨씬 더 유명하지만 사실 그 이전엔 남편인 마이클 에어리스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나름 일가를 이뤘었다. 심지어 [[달라이 라마]]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할 정도로 [[티베트 불교]]에선 나름 정통했다. [[동남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그의 무덤은 영국에 있지만 특이하게도 동남아 불탑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 오랜 가택연금 생활은 두 아들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수 치가 민주화운동을 시작하고 가택 연금을 당했던 1988년 당시, 장남 알렉산더는 15살이었고 차남 킴은 11살이었다. 민감한 청소년기에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과 나중에는 아버지마저도 사망해서 정신적 버팀목이 사라진 것 때문에 아들들이 무척 힘들어 했다. 더구나 아버지가 사망할 때 어머니를 무척 보고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영국으로 출국하면 다시는 미얀마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찾아오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한 모양. 현재 미국에서 살고있는 장남은 어머니가 가족 대신 정치를 선택한 것 때문에 수 치와 절연을 한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영국에 사는 차남은 어머니를 이해하는 편이라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으로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인들로 부터 국모로 불리며 더욱더 존경을 받게되었는데, 가족과의 관계를 희생해가며 미얀마 국민들을 선택한 수치의 행동에 많은 미얀마인들이 감동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수치가 2명의 자식을 잃었지만 반대로 6천만명의 자식을 얻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 중에 미얀마 방문이 있어 수 치를 공식적으로 방문했고 다음날엔 수지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묘지에 참배하였다. 아웅산 묘소 참배와 관련해선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문서를 참조할 것. * 군사독재정권이 한창 극성일 때 미얀마에 [[자연재해]]가 생기거나 하면 정부의 행정 능력상 어쩔 수 없이 원조를 받아야 하는데 수 치는 오히려 외국 언론들이나 정부에게 "절대 원조해주지도 말고, 오히려 외면해라. 당신들이 버마를 돕겠다고 나서는 건 오히려 군부를 도와주는 꼴이다."라고 자주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버마에 여행 오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돈을 뿌리는 건 군부의 배를 채워준다는 이유로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 아직 군사독재정권에 탄압당하던 시절에 인권단체에서 일하던 젊은 미얀마 이민자 출신 인권운동가가 평소 영웅으로 믿고 있던 아웅산 수 치와 만나 대화한 후 울었다고 한다.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인권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독설을 퍼붓는 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출처 필요)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22분쯤 피터 파커 방에 포스터에 나온다. * 외부세계에서는 수 치가 미얀마에서 수 치 여사라고 불리는 걸로 알고 있지만 미얀마내에서는 어머니로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웅산 수치를 보고 엄마, 어머니로 부르고 있으며 2021년 군부쿠데타 이후에도 수치는 미얀마의 국모로 불린다. 시민방위군이 군부와 싸우는 중에 위관급, 영관등 젋은 장교들이 탈영해 반군부진영에 합류하는 것도 아웅산 수치 때문인데, 이들의 경우 유년시절 수치를 또다른 어머니로 따르며 성장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